인문사회

우주과학시대에 용납될 수 있는 신

男女共存 2024. 2. 25. 05:08

성철 스님(~1993) 생전에 하신 말씀이다. 1980년대 법문으로 추정되니 대략 40년 전쯤인 것 같다. 종교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미 기존 걸론 안 되겠다 싶어 살 길을 진지하게 모색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중에서 유대교는 워낙 소수에 대한 선지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슬람교는 폐쇄적이고 강제적인 특성을 여태 유지하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비교적 개방적이며 곳곳에 널리 흩어져 있는 편이다. 특히 미국의 개신교 견제 효과 덕인지 로마 카톨릭은 더욱 더 반성적인 입장과 더불어 열린 입장을 나타낸다. 개신교에 비하면 우주과학시대에 대한 저항 역시 덜 하다.

성철 스님 법문에 따르면, 구약부터 수천년간 명맥을 이어온 전지전능한 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죽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만들어낸, 전지전능하다고 믿었던 신에 관한 이야기들이 과학이라는 안경에 의해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미 40년 전에도 그리스도교 스스로 큰 존재적 위기를 감지했던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일평생 남을 위해 살았던 정신, 그 것이 곧 하느님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인간이 치장하고 둔갑시켰던 끝도 없는 옷들을 벗겨내고 2000년 전의 본질로 회귀한 것이다. 그리고 성령, 즉 하느님이 인간 속에 사람마다 있다는 것(내재신)이 있으니 이 성령 속에서 하느님을 찾자고 한다. (인간을 신격화시키는 측면에서 불교는 오히려 결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로마 카톨릭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살 길을 모색한다. 최근 성당을 가보니 '성령'이라는 단어를 미사 중에 더 자주 넣어서 사용하고 있다. 반면, 아직 기세 등등한 개신교는 성령이라는 단어를 부정한다.  (요한, 베드로, 안드레아 등) 인간을 '성인'으로 추앙하며 신격화시켜온 카톨릭의 기조 역시 개신교는 줄곧 부정해오는 입장이다.

사람이 곧 우주요, 신이 곧 우주다. 그러므로 사람 안에 신은 내재되어 있다. 인간 스스로 그 내재된 신을 찾아 각자 나답게,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 이게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진리 아닐까?

전지전능하기까진 않더라도 영적인 존재의 세계는 있을거라고 난 믿는다. 신 전체를 부정하기엔 부분 증거는 차고 넘친다. 다만, 가면을 쓴 채 나다움을 찾는 것을 방해하고 희생과 맹종을 부추겨온, 권력에 오랜 기간 공생하며 빌붙어온 족속들, 그들이 주장한 신은 분명 가짜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설령 실제 존재했더라도 성령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