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호였던 목장 주인 스탠포드 부부가 외아들을 병으로 잃자 목장을 기부하고 대학을 세운 곳이 바로 스탠포드대학교다(1891~). 면적이 서울대 캠퍼스의 무려 8배! 그들은 당시 저명한 생물학자 조던을 초대 총장에 임명한다. 전통의 아이비리그와 달리 인문학과 기술공학의 결합을 학제의 원칙으로 삼았고, 단기간에 미국 최고의 명문대로 올라 섰다. 실리콘밸리가 이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니 말 다했다. 스탠포드 부부와 조던 총장은 그렇게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훗날 스탠포드 가문은 비윤리적으로 부를 축적한 자본가였으며, 특히 조던 총장은 고약한 독재와 비리를 일삼았던 것이 밝혀졌다. 또한, 스탠포드 부인을 독살하려 한 정황도 의심받고 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선천적 장애인과 정신 질환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골수 우생학주의자였다는 대목이다.
장인어른께서 종종 말씀하시는 그 것과 주제가 상통한다. "그럼 (가엾은) 얘네들을 죽일 것인가?!" 죽도록 내버려 두느냐, 함께 더불어 사느냐에 대한 문제다.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보수와 진보...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두 개의 축 가운데 카톨릭의 이념과 후대를 향한 마음으로 꽉 채워져 있는 장인어른은 후자에 서 계시다.
난 어느 한 쪽으로 심하게 치우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의 본질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는 것 아닌가?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독을 내뿜는 투쟁도 불사한다. 서로를 잡아먹으려 안간 힘을 쓰고, 말미엔 서로 썪을 놈, 죽일 놈 하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하지만, 두 축은 새가 나아가는데 있어 좌우 균형을 잡도록 해주는 날개가 아니었던가? 견제와 균형의 관계. 일정 선(=도)을 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그리고 균형이 깨지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모두 파멸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유연해져야 하는 이유다. 행여나 잠시 균형을 잃어 어느 한 쪽으로 급격히 쏠리게 된다면 다른 한 쪽은 결사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악순환고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견제와 균형은 공백이 없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 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처럼 보이지만 불가분의 관계로 볼 수도 있다. 유승민의 설명을 빌리자면, 대한민국 자유주의 헌법의 가치는 사실 자유 말고도 평등/복지/정의/공정/인권 도 포함되어 있는데, 보수진영에서 너무 자유라는 단어에만 치중하니까 얼치기 사이비 좌파들이 나머지를 다 자기 꺼라고 하는거 아니냐는 것. 즉,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서로 등 돌리는게 아니라 마주하며 앞을 향해 가는 것. 이 것이 바로 중도 보수 아닐까? 좀 더 쉽게 표현한 단어가' 따뜻한 보수'다.
함께 더불어 사는 길에 진지하게 들어서되, 평등과 분배를 '우선시'하는 진보 진영과는 확실히 거리를 두는 것이다. 보수 진영답게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성장'을 중시한다. '민간' 기업 활동을 경제 성장의 근간으로 삼고 사각지대를 공공 부문이 메워주며 보완하도록 한다.
여기서 비교해볼 부분은 진보 진영의 성장 전략이다. 평등과 분배를 '우선시'하는 입장이지만 성장 없는 분배란 있을 수 없으니 지난 정권에서 꺼낸게 바로 '소득주도성장' 카드였다. 국민의 구매력을 높여주어 국가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이론이다. 평등과 분배 이념 안에서 성장을 찾은 것.
허무맹랑하다고 비판이 쏟아졌지만 ILO(국제노동기구) 권고 사항이기도 했고 전혀 근본 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문제는 '주도'에 있다. 장기 저성장 기조 속에서 구매력 상승이 경제의 선순환을 일으키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엔 이견이 없지만, 국가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주도한다? 이 것은 의문 부호였다. 대한민국은 마침내 실험대가 되었고, 안타깝게도 큰 실패를 맛보았다. 나조차도... 최저임금 상승 속도만 좀 조절했더라면 어땠을까,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예상은 속절 없이 빗나갔고, 결국 기다려주던 일부 국민들의 신임마저 잃었다. 마치 부동산 정책처럼 말이다. 책사 장하성은 중국으로 도피했다.
누군가 이런 핑계를 댄다. 시장경제의 성장과 맞물려야 소득주도성장이 결국 성공할 수 있고, 초기에도 그렇게 두 축으로 설계했다고... 하지만, 정부는 실제 어찌 했는가? 민간 기업 생태계를 손보겠다고 역대급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쏟아냈고 연일 일하는 사람을 불러냈다. 소득주도성장과 고용정책이 맞물려 민간이 아닌 공공기관, 공기업, 공무원 채용 또한 역대급으로 늘렸다. 시장경제의 성장(=민간 기업 활성화)을 정부가 기대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씁쓸한 표정을 뒤로한 채 기업인들을 찾아다니며 투자 활성화를 뒤늦게 '읍소' 하는 마지막 모습을 드리우며 지난 정권은 쓸쓸히 퇴장했다.
이젠 다시 자유와 성장 이념 안에서 분배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만약, 성공하면 후대를 위한 멋진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카운터파트너에게 기회를 넘겨주어야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유승민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중도보수 주자에게 조종키를 맡기고 싶다. "그럼 얘네들을 죽일 것인가?!" 에 대한 나의 답은 유승민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가엾은 자를 절대 죽도록 두지 않는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모색해왔고 선진복지국가를 향하는 거대한 파도 위에 있기에 사실 답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한다. (마지못해 하는, 과거의 선심성 복지가 더이상 아니다.) 단지, 속도의 차이가 남아있을 뿐. 장인어른으로선 그 속도가 늦춰질까, 일시적으로 뒷걸음 칠까 경계하시는 것 아닐까?
앞서 언급한대로 실리콘밸리는 스탠포드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지난 20세기 인류 문명의 발달을 '주도'한 곳이고,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스탠포드대의 초대 총장이 탐욕에 찌든 골수 우생학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첫째, 탐욕과 부도덕은 좌우 어느 한 쪽의 전유물이 아닐 것이요. 둘째, 골수 우생학주의자로서의 그는 단지 지나치게 한 쪽에 치우쳤던 거라고...(도를 넘은 극단의 우파).
초대 총장으로서 족적을 남겼음에도 그는 미국 사회, 그리고 스탠포드대 자체에서 이미 심판되었고 명예 역시 박탈당했다. 자유의 가치 아래 '자연 정화' 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쪽 날개의 견제를 함께 받으면서다. 자유주의는 부디 그렇게 계속 수정되고 정화를 거듭하면서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작금의 대한민국 보수(현 국민의힘) 역시 적잖은 수정과 정화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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