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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빼미 감상 후기 (feat. 광해 & 남한산성)

男女共存 2022. 12. 5. 16:19

유해진 배우가 분한 조선의 왕 인조 그는 누구인가? 백부인 광해군을 숙청하고 왕위에 오른 '인조반정'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 역사적 배경
- 광해군은 예전에 영화 '광해'에서 이병헌 배우가 분했었다. 폭군으로 조선왕조 역사에 남았기에 '~조'나 '~종'으로 불리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의 평가와 달리 광해는 백성들의 편에 섰고 평화와 실리를 추구하는 실력 있는 왕으로 후대에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 대동법 시행, 명청 중립외교, 선조의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도 친교를 맺는 등 보수 주류 양반들이 딱! 싫어할만 한 행적을 남겼다.
불만을 품던 한 파벌 세력에서 로열패밀리 인조를 끌어들여 광해를 몰아내는 인조반정이 성공한다.
- 인조는 광해군이 벌였던 중립외교 노선을 철폐하고 친명 외교정책으로 전환한다. 이에 분노해 청이 조선을 쳐들어온게 바로 병자호란.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박해일 배우가 분한 인조는 시종일관 초조하다 못해 초라하다. 청과 지금이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최명길(이병헌)과 친명 사대주의를 고수해야 한다는 김상헌(김윤석) 간의 한치 양보 없는 나름의 우국충정은 백미다. 인조는 마지못해 청에 백기를 들면서 이마를 땅에 세 번 피나도록 찧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다. 이 뿐 아니라 인조의 아들들(소현세자 포함)이 볼모로 잡혀 청나라로 넘어가서 살게 된다.
- 그로부터 8년. 영화 '올빼미'가 시작한다.
소현세자가 부인과 함께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다. 몸도 성치 않다. 학질(말라리아)을 앓는 중이다. 소현세자의 아들(세손)은 부모와 생이별한 채로 8년간 조선 왕궁에서 지내다 비로소 부모를 만난다. 그런데 인조는 아들을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청나라에 당했던 수모 때문에 치를 떨어 왔는데, 아들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강국으로 부상한 청과 수교를 넓히고 망해가는 명과의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면서, 안 그럼 우리 조선은 죽습니다~ 라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귀환한지 2달 만에 죽는다. 의원한테 치료받는 도중 학질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다. 이어서 소현세자의 부인이 남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자 인조가 사약을 내렸고, 세손은 제주도로 유배 당해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2. 픽션
이러한 역사의 단편 속에 뭔가 의심스럽고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 틈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스릴러 사극 한 편이 완성되었다.
세자의 죽음은 정치 개연성이 충분히 의심된다. (왕위 계승 다툼, 외교 노선 갈등...) 영화처럼 인조가 친아들을 죽이라고 직접 지시까지 하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권력 다툼 과정에서 소현세자 일가가 몰살됐을 가능성에 대해 굳이 깊이 캐내려고 하지 않았기에, 같이 방조하고 덮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찜찜한 뭔가가 있었다면 은밀하게 행해졌을 테고, 의원과도 연관이 있었을 거라는 점에 착안해 감독은 허구의 인물인 맹인 침술사(류준열)를 극의 정 중앙에 꽂아 넣었다. 그 것도 낮에는 안 보이고 밤에는 쪼금 보이는 주맹증(실제 있음)을 가진 맹인. 침술과 맹인은 뭔가 안 어울릴 듯 하면서도 잘 어울린다. 게다가 주맹증 환자로서 밤에는 보인다면 은밀한 영화를 풀어나가는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해진다.
감독이 맹인을 극의 주인공으로 넣은 이유는 또 있는 것 같다. "진실을 마주해야 함은 쓰디 쓴 고통이 따른다" 는 뉘앙스가 류준열의 대사 중에 여너 번 나온다. 이는 인물 셋 모두에 해당되는 얘기다. 침술사는 낮이든 밤이든 아예 못보는 척 하고 사는게 세상 살기 이롭더라 했는데, 사실 세자도 그간 놓인 현실을 마주하며 쌓인 근심을 내려놔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고, 인조의 안면 마비와 극도의 정서 불안 증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또 그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덮어두며 살지 못하는게 인생사 아니던가. 류준열 역시 궁궐 밖으로 마지막에 나가면 될 것을, 세손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류준열의 표정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삶에 대해서 자문해본다. 편한 삶이 좋은가? 가늘고 길게? 고립되더라도 싫은 소리 들으며 사는 건 싫은가? 아니면 죽기 전까지 이름을 남기고 가고 싶은가? 큰 의미가 있는 삶, 선이 굵은 삶을 살고 싶은가?
내 삶은 지금까지 어땠는가? 현재 대체 난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맹인 침술사처럼 어려운 처지에서도 하루 하루를 훌륭하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너무도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러운 삶은 불행할 뿐이다.

나는 지금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가?
처한 위치가 각자 다르다. 왕은 왕대로, 맹인은 맹인대로 그리고 나는 나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어떠한 목표와 삶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영화 보는 내내 자신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