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손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부모없이 자라는 것보다는, 선진국에 새로운 가족을 희망하는 좋은 부모를 만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제도. 해외 입양.
해외 입양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인식은 뭐였나?
실제로 해외 입양아동 중에는 커서 훌륭한 인물이 된 경우도 많다. 당시 대한민국의 여느 서민 가정보다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자라고, 해당 국가의 선진 교육 시스템을 접했을 것이다. 대부분 성인이 되면 생물학적 부모를 찾거나 고국을 찾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훌륭한 양부모를 만나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부모를 만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인종차별과도 싸워야 한다. 그렇더라도 당시 한국 고아원의 열악한 실태와 경직된 사회적 시선 등을 감안한다면 가엾은 그 아이들에게 마땅히 더 나은 선택이 없지 않았을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3년 전 제작된 mbc의 한 프로그램을 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그동안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고아를 수출하여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던 고아 수출국이었던 것이다.
고아 정책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자.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하기 쉬운 고아들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고민거리였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구빈법에는 고아들이 장인의 도제로 들어가 그 집에서 먹고 자면서 기술을 배워 나오는걸 장려하는 제도도 있었다. 사회 안정을 위해서는 부랑자 수를 줄이고, 그들이 단순히 정부 지원금을 축내며 살도록 두는게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꾼이 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국가의 역할이었다.
6.25 전쟁 이후의 대한민국 사회 역시 고아 문제는 심각했다. 쏟아져나오는 전쟁 고아들을 정부가 모두 수용하기란 불가능했을 테다. 홀트재단과 같은 기관들이 들어와 미국, 덴마크, 프랑스 등 미주/유럽 선진국에 한국인 고아 입양 사업을 팔 걷어부치고 추진했다. 전후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서는 체계화된 입양 시스템의 국내 유입을 규제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전쟁 고아들을 맡을 여력도 안 되는데 선진국 기관들이 알아서 척척 해주니 고마울 따름 아닌가. 한국의 해외 입양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오랜 기간 세계 최상위 건수를 유지해 왔다. 한국 아이들을 키워보니 똑똑하고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대한민국이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된 이후로도 관성은 이어졌다. 대략의 역사가 이랬다.
하지만, 이 안에는 우리가 몰랐던 3천달러라는 단어가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다. 이 3천달러는 1980년대 초 기준이다. 홀트의 사회복지사 1년 급여를 상회하는 큰 돈이 입양 1건당 성사 수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고아원에 있다고 다 해외 입양 대상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나름의 조건이 있었다. 가령,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살아 있고, 그에게 입양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입양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설령 입양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생물학적 부모가 살아있는 경우 입양해갈 양부모 측에서 꺼려했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누군가가 문서를 위조해서 아이를 부모의 신원이 불분명한 상태. 즉, 생부모가 없는 아이로 만든 것이다. 동의 없이 아이를 해외로 입양시킨 것도 모자라 한평생 부모 미상인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돼서도 안 되고 애초에 될 수도 없었던 일을 몰래 자기들끼리 되도록 짜맞춘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걸까? 결정적인 이유는 3천달러 때문이다. 1건이 성사되면 사회복지사 연봉 이상의 수입이 들어왔던 반면, 아이를 오래 데리고 있어봐야 자체 유지비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사랑을 행동으로" 라는 구호 아래 홀트재단은 한 켠에선 사람 파는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인신매매". 표현이 좀 심한가? "사랑"과 "봉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이들의 영역에서조차 돈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고 있었다. 돈과 권력의 유혹에 빠져 허우적 댔던 종교의 역사를 연상케 한다.
홀트를 싸그리 부정할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해주었다. 하지만, 돈이 개입되는 만큼 본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마냥 그들도 탈선을 피해가지는 못했다는 사실이 극명히 드러났다. 홀트 측에서 극히 일부 구성원의 만행이었을 뿐이라 변명한다면 정말 무책임하고 치졸한 대응일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의 배경에는 당시 정부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한 푼의 외화가 아쉬운 상황에서 해외 입양은 "파독 광부"와 견줄 수 있는 외화벌이 수단이었다. 골칫거리인 고아 문제도 일소에 해결하면서 국부를 챙길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따라서, 해당 사업에 정부지원금과 각종 세제혜택이 뒷받침 되었음은 물론, 다른 나라들과 달리 입양해갈 양부모가 직접 한국을 방문하지 않아도 입양 절차가 가능했다는 점은 정부의 규제가 그만큼 느슨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해외 입양은 정부의 지지를 엎고 등에 날개를 단 것이다. 입양을 성사시켰던 핵심 관계자들은 금전적 보상은 물론이요, 서슬퍼런 군사 정권으로부터 한껏 이쁨을 받았을 터.
서류 위조 당사자는 기관에 소속된 인물로서 해당 업계에서 레전드로 추앙받으며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느꼈던 사실은 모두가 한통속이었다는 거다. 쿵짝이 서로 맞았다. 그래서 서류 위조는 물론 날치기 통과까지 모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일로 입양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근본 취지가 변질되지 않도록 깊은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특히, 돈이 개입되는 곳은 anywhere 성역 없는 감시와 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 정부 부처 중 보건복지부의 예산 편성 규모가 가장 크다. 덩치는 크고 눈은 먼 돈이 줄줄 새기가 여러모로 좋은 환경이 바로 보건복지 분야다. 감시와 견제가 더욱 더 필요한 곳이다. 가슴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이성은 더 차갑게 붙잡아놓고 일을 마주해야 한다.
입양을 바라보는 입장이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분명한 건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실제로 존재한다. 지난 때묻은 과거를 덮으려는 자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연대에 힘을 보태고 싶다. 응원해주고 싶다. 그들의 절규는 자신의 한풀이에만 그치지 않을테다. 부조리의 역사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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