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을 코앞에 둔 화제작 '파묘'. 이는 불호보다는 호가 훨씬 강력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개봉 둘째 날인가에 봤다. 안타깝게도 난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보고 나온 관람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현실감과 감독's 주제의식 간 부조화"로 그 이유를 정의할 수 있겠다.
※ 불호의 보편적인 이유인지는 모르겠고, 본인 기준에서 이유가 그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체가 어두컴컴한 밤에 산길을 배회하며 사람과 동물의 간을 빼어 먹고는 동트기 전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분히 다뤄볼 만한 이야기 소재일 것이다. 전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오히려 현실감 있게 그려내면 나 또한 재미있게 본다. 즉, 내게 비현실성 자체는 영화에서 문제가 아니다. 한편, 일제가 얼마나 치졸하게 우리를 괴롭히려 했는지를 전통 풍수지리학을 발판 삼아 요리조리 파보려는 것은 신선하고도 흥미를 충분히 유발하는 시도였다.
문제는 영화 후반부터다. 감독의 주제의식으로 흐름이 넘어가면서 비현실감과 감독's 주제의식 간 상호 부조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관객들 대부분 몰입감이 단계적으로 상승했을 포인트에서 본인은 오히려 미끄러지듯 하락했던 것 같다. 이 영화 속에서의 비현실성과 주제의식은 무엇이었는지, 어떠한 이유로 재미가 반감되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짚어보겠다.

영화 후반부에 10척도 넘어 보이는 일본 쇼군귀신이 등장한다. 비주얼은 쇼킹 그 자체다. 얼굴 주름까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내심 어떤 의도로 귀신의 실체 그대로의 모습을 일찍부터 관객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싸구려가 아닌, 나름 첨단 분장기술을 적용했을 텐데도 나는 보는 순간마다 '티라노의 발톱(심형래 감독작)'이 연상됐다. '이걸 왜 이렇게 보여주지?' 불현듯 영화 성격이 바뀌고 등급이 하나 내려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파묘 감독의 특성상 귀신 영화를 깜놀 무섭게 만들기보다는 스토리로 영화를 쭈욱 끌고 나간다고 말이다. 난 비주얼의 퀄리티를 말하는게 아니다. 모습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실제 접신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무당은 귀신이 들린 것처럼 굿을 하긴 하지 않나? 반면, 귀신이 밤에 관뚜껑 열고 배회하면서 사람 간 빼먹고 실제 다니나? 갑자기 구전 설화로 후퇴한 느낌이었다.
전반부까진 토속신앙과 풍수지리가 그럴듯하게 영화를 지배하였는데, 후반부 들어 귀신이 아주 리얼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초반에 살짝 깔려있던 현실감은 지워졌다. 이 포인트에서 누군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이후의 주제의식과 드라마틱한 요소에 의해 몰입감이 점점 더 고조되었을 것이다. 일제가 박은 말뚝을 몰래 뽑고 다니던 '철혈단'의 비밀 활동, 철혈단의 손이 닿지 않도록 친일파의 시신 아래 쇼군귀신까지 동원시켜 '악지'에다 묻어둔 말뚝과 같은 설정은 충분히 그럴듯 하지 않은가? 그렇게 일제 만행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역사의식과 드라마적인 요소가 가슴 속 공명을 일으키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렸어야 했는데... 쇼군귀신이 등장한 이후로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일감정을 쥐어짜는 진부함이 느껴지면서 피로도만 높아졌을 뿐이었다.
영화 관람 직후, 왜 잘 나가다 굳이 애국심까지 쥐어짜내며 감독이 과한 욕심을 부렸는가부터 생각했다. 하지만,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니 감독의 주제의식 표출은 무리수였네~ 하고 딴지를 걸 것만은 아니었다. 소위 관객들에게 제대로 먹힌 부분이 훨씬 많았으니까 흥행과 장르적인 부분 모두 성공했다는 평을 들을 만한 수작으로 남을 것이다. 굳이 실수라면 '비현실 Color'로 뒤덮인 색안경으로 중간에 관객의 안경을 갈아 끼워놓고는 역사의식은 또 너무 진지하게 다뤄버린 부분이다. 아니, 고쳐 말하면 내 안에서는 그 부분이 부조화를 이뤄 앞을 가로막았다.
차라리 '곡성'처럼 영화 속에서 귀신을 보일듯 말듯 미스테리하게 다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좀 더 현실적이니까. 물론, 그게 또 누군가에겐 흥미를 반감시키는 답답한 요소가 될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의 봄' 영화 관람 후기 (3) | 2023.11.22 |
---|---|
라흐마니노프 - 홍석원 손민수 한경필하모닉 (0) | 2023.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