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드리블과 포퓰리즘
한 선수의 드리블이 무척 화려하다. 관중들의 환호가 터지자 그 선수는 더더욱 열을 올린다. 접고 접었는데 ... 접더니 또 접는다. 놀라운 건 접을 때마다 접는 기술이 다 다르다. 그러는 사이 상대 수비수들은 모두 자기 위치로 돌아와 있다. 연계 플레이로 공을 받으려 움직였던 다른 공격수들은 이내 몸도 마음도 지친다.
잘못 됐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관중들도 있지만, 끝까지 모르는 이들도 제법 있다. 환호는 곧 인기요, 팬서비스는 선수 개인과 구단에 영향을 주므로 감독도 드리블 금지! 불호령을 내릴 순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 공보다 느리므로 패스나 슈팅보다 우선순위에선 밀리지만 드리블은 분명 요긴한 타이밍이 있다.
축구 서적을 읽다가 문득 축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언급한 드리블 편을 읽을 땐 '포퓰리즘' 이 떠올랐다. 비합리적인 드리블에 좋다고 열광하자 더 날뛰는 선수. 마치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표를 쫓는 정치인 같지 않은가?
한일전이 벌어지는 날 저마다 방구석에서, 또는 직접 현장까지 와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아지경 경기에 몰입한다. "저럴 땐 저렇게 했어야지! 아휴~" 하며 한 마디씩 내뱉는데 각자 열혈 박사님들이 따로 없다. 그 장면엔 예전의 내 모습도 보인다.
그땐 축구를 너무 모르고 본 것 같다. 그럼 지금은 뭘 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축구 덕후나 축구를 업으로 삼은 분들에게 굳이 묻고 싶지 않다. 묻는 대상을 낮춰서 그저 좀 잘 안다는 얘기나 듣고 싶지. 나 잘난 맛에 살고 싶은 달콤한 유혹.
저마다 정치 성향이 있다. 뉴스 댓글들을 보면 둘로 갈려 다들 자기 말이 맞단다. 제발 본인 말대로 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단다. 그중 누군가는 막힘 없는 논리와 언변으로 자신의 생각을 일관되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막상 대부분은 특별한 이유가 없거나, 주류 집단의 프레임이 만들어낸 얄팍한 키워드 몇 개를 나열하는데 그친다. 바로 '우민정치'가 연상되는 지점이다. 대중의 수준이 결코 높지 않다는 증거다. 대중 사이에 끼어 있는 나 또한 카운터파트너가 가드 자세만 잡아도 쫄아 기절부터 할런지 모르겠지만, 다행인 점은 정보의 독점이 사라지면서 대중이 과거보단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지고 있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축구 역시 과거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유럽발 선진 기술들이 요즘 유튜브만 검색해봐도 줄줄이 나온다. 관중의 수준도 결국 올라갈 것이다.
"국민은 언제나 옳다"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정치인이 내건 말이다. "국민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같은 말인 듯. 언제나 옳으므로 국민이 원하는 것, 명령하는 것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섬김의 대상인 팬들은 리그 우승을 원하지만 축구 전문가가 결코 아니다. "기필코 우승하라!" 라고 명령할 수는 있지만, "저 선수에게 볼을 많이 줘라" "드리블 좀 더 해봐라" 할 순 없다. 설령 팬들이 거품을 물고 떼를 쓴들 구단이 이리 저리 휘둘리면 되겠는가?
포퓰리즘의 폐해는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대승적 차원이 아닌, 표밭을 위한 단편적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된다면 일시적으론 재미를 볼지 몰라도 섬김 정치의 본의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 길게 봤을 땐 모두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이는 여야를 가릴 것이 없다.
달콤할 수록 함정일 위험 또한 높은 법. 명심할 것.
근데 그만 옆으로 새고 축구기술 향상에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