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Alegria 관람 후기. 그리고 클래식 음악
[공연 시작 전 주위를 끄는 장면]
와이프가 애들 보여준다고 해서 얼떨결에 따라간건데 꽤 인상적이었다. 오래 전 몸담았던 대학 합창단도 생각났고,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클래식 음악까지 생각이 닿은 건 7세 축구반 - 학부모님(음악인)의 영향도 크다.)
서서히 꺼져가던 불씨에 숨을 불어넣어 고퀄 공연예술로 탄생시킨 태양의 서커스.
예전 대학 합창단에서도 과거와 다른 변화를 주려고 하면 그게 공연이든 술먹고 노는 연중 행사든 선배(졸업생 포함)들이 말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다 이유가 있어서 전에 그렇게 해왔던 거라면서... 아마추어도 그럴진대, 음악을 업으로 삼는 분들이야 오죽하랴.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도 지켜내고 싶은, 양보하고 싶지 않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예전엔 변화에 민감해하는 선배들이 싫었는데, 이젠 나도 소중한 뭔가를 지켜내고 싶고 그 분들이 점차 이해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듯.
어느 분야든 그 속에는 빛나는 고유의 가치(이하 '핵심 가치')가 들어 있다. 합창은 '화음'이었다. 개인이 튀지 않으면서 여럿이 하모니를 이뤄내는데 때론 공명이 된 것처럼 소리가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너와 내가 합일된 느낌. 그 것이 좋았고 혹여나 그 것이 깨질까봐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던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클래식 음악은 변화가 가능할까? 서커스와 클래식 음악을 비교해보고, 태양의 서커스 사례를 거울 삼아 클래식 음악도 어떠한 방향을 살펴보면 좋을지... 극히 주관적이고 멋대로인 방구석 애호가의 습작을 시작해본다.
1. 공연 예술
- 서커스와 클래식 음악 모두 공연 예술이다.
2. 핵심 가치
- 서커스의 핵심 가치는 '스릴'과 '예술성'이다. 이를 만들어내는 건 '곡예'다. 서커스에서 말하는 예술성이란 '아름다움'과 '화려함'으로 부연할 수 있다.
- 클래식 음악의 핵심 가치는 '몰입감'과 '(고도의)예술성'이다. 이를 만들어내는 건 '연주'다. 클래식 음악에서 말하는 예술성이란 '아름다움' 외에 '인류에 새로운 화두를 던짐'으로도 부연할 수 있다. (고도의 예술성인 이유는 클래식 음악의 아이덴티티 자체가 수준 높은 예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전을 검색해보니 20세기 전반까지의 서양 고전음악을 일컫는 표현이라 하며, 영어로는 "Classical Music" 이다.)
※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우주를 열어준다"고 했다. 다소 궁극의 지점에 있는 표현 같고 난 대신 과정에 있는 단어인 '몰입감'을 씀.
3. 개선(변화) 대상
- 태양의 서커스 이전의 서커스는 어떠한 상태였나? 어렸을 적 사자, 코끼리가 나왔던 걸 TV로 많이 봤다. 최근에 실제로 봤던 건 3년 전 대부도 동춘서커스다. 5년 전 경남 지역의 서커스보다는 수준이 꽤 높고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태양의 서커스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단가가 안 맞고 지원자도 없으니 중국인들을 데려다 썼고, 다행히 티켓 값에 정부 보조금이 투입된 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 전통 서커스에서 느껴지는 개선 대상을 단어로 정리하자면, 저급성 / 투박함 / 과거 박제 / 답보 정도가 되겠다.
- 클래식 음악은? 서커스에 비하면 팬층이 두텁고 국제적인 명성도 워낙 높다. 사실 비교 불가다. 하지만, 모차르트나 차이코프스키 시대, 20세기 전반기에 비하면 지금의 입지는 아쉽지 않을까? 모차르트는 당시 유럽 상류 사회에서 마이클잭슨 쯤 됐을 수도. 소수의 관객에 만족할텐가? 결국 작품이란 누군가가 봐줬으면 하고 만드는 것 아닌가!
> 마찬가지로 클래식 음악에서 느껴지는 개선 대상을 단어로 정리하자면, 지루함 / 잘 모르겠음 / 과거 박제 / 답보 정도가 되겠다.
4. 변화 방안
- 태양의 서커스는 전통 서커스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관건은 서커스의 핵심 가치(스릴과 예술성)를 지켜내면서 변화를 일궈냈느냐다. 결론은 고유의 가치를 지켜냈음은 물론 이를 더욱 빛나게 했다.
한편, 공연의 질적 수준을 높이려면 자본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본은 공연의 인기(=티켓 수익)와 직결된다. 공연의 인기와 공연의 질적 수준은 자본을 매개로 서로의 등을 조금씩 밀고 올라가주는 관계다.
>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무대 시설, 분장, 의상 등을 더욱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세련되어졌고 지저분함과 뭔지 모를 거부감은 사라졌다. 강남 엄마가 보러올 수준이 됐다.
> 스토리를 입혔다. 공연 시간 전체가 주제 Alegria에 맞춘 연출이었다. 한 편의 극이었다.
> 코믹(광대극?)도 포함시켰다. 잘 어우러졌고 반응이 곡예 못지 않게 좋았다.
> 라이브 밴드를 포함시켰다. 가장 의외였다. 밴드가 서커스의 범주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느낌이었다. 연주와 노래의 퀄리티가 높았다.
이렇듯, 서커스에 스토리, 코믹극, 밴드 등의 부가 요소를 적절히 화합시킴으로써 관객 흥미도를 높였으며, 세련되고 고급진 공연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서커스 본연의 가치인 '스릴'과 '예술성' 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 클래식 음악은 서커스의 어떤 부분에서 insight와 inspiration을 얻을 수 있을까?
지루함과 잘 모르겠음. 이걸 극복하기 위한 변화를 주고 시장을 확장시키는 일은 음악인들의 몫인거 같다.
그러한 음악인 중에 금난새와 랑랑이 떠오른다. 업계 내부적으론 이들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일반 대중이 봤을 땐 고마운 존재다. 작품 설명과 쇼맨쉽은 지루함과 잘 모르겠음을 해소하려 했던 하나의 훌륭한 시도였다.
나는 청중의 몰입감을 높이는 요소를 좀 더 발전시키는게 좋다고 본다. 아래의 방법은 어떨까?
> 공연 홍보물 및 티켓에 QR코드를 삽입하여 해당 공연의 곡들에 대한 전반적인 배경을 설명해주는 영상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한다. 가령, 라흐마니노프의 곡이면, 지휘자가 출연해 예비 청중의 몰입감을 높일 수 있도록 쉽고 맛있게 미리 설명해주는거다.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도 연주석을 대표하는 자로서 해당 곡을 대하는 생각, 지휘자의 디렉팅을 바라보는 관점을 예비 관객에게 함께 전한다. 그리고 그 설명은 공연 당일에 연결이 되도록 한다.
> 무대효과 또한 몰입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전에 전람회의 '하늘높이'란 곡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근데, 어느 날은 유튜브에서 밤하늘의 별이 흐르는 배경 영상이 함께 나오는 '하늘높이'를 틀었는데, 그게 뭐라고 쭉 빨려 들어가더라. 아래 캡처한 사진에서도 스크린 또는 조명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도와주고 있다. 빨강 단색 조명과 검정 단색 정장의 연주자&피아노 조합에서 흘러나오는 헝가리 무곡은 무척이나 어울렸다. 현실적으로 스크린 설치가 어렵다면 조명만이라도 어떨까? 집도 조명 하나로 분위기를 더 낼 수 있지 않나?
지키고 싶은 고유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 가치가 더욱 빛나게 해주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본 하루였다. Thanks to 태양의 서커스 ♡♡

